미치오 슈스케 I 읽는 방법, 순서 선택 전에 알면 좋은 것들

얼마 전 서점 신간 코너에서 미치오 슈스케 I 표지를 봤는데, 제목이 딱 한 글자라 오히려 더 오래 눈에 남았습니다. 보통 소설은 앞에서부터 읽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그 당연한 습관을 살짝 흔듭니다. 두 편의 이야기를 어떤 순서로 읽느냐에 따라 읽는 감각이 크게 달라지는 작품이라, 책을 펼치기 전부터 괜히 선택지가 생긴 느낌이 들어요.
미치오 슈스케는 장르적 재미와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같이 다루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고, 특히 구성 자체에 장치를 넣는 방식으로 자주 회자됩니다. 이번 작품 I도 그런 흐름 위에 있습니다. 단순히 반전이 있는 소설이라기보다, 독자가 어느 쪽 문을 먼저 여느냐에 따라 인물의 운명이 다르게 느껴지는 책에 가깝습니다.
미치오 슈스케 I는 어떤 책인가
I는 일본 출판사 슈에이샤에서 2025년 11월에 나온 장편소설입니다. 분량은 약 304쪽으로 알려져 있고, 크게 두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목은 알파벳 대문자 I입니다. 일본어로는 아이처럼 읽히기도 하고, 영어의 I처럼 ‘나’라는 의미도 품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재미있는 지점은 책 안에 담긴 두 이야기를 독자가 골라서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쪽은 ‘게오스민’, 다른 한쪽은 ‘페트리코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 다 냄새와 관련된 단어라 분위기부터 묘합니다. 게오스민은 흙냄새를 떠올리게 하고, 페트리코르는 비가 내린 뒤 올라오는 냄새를 떠올리게 하죠. 제목만 봐도 축축하고 어두운 정서가 살짝 배어 있습니다.
공식 소개에서 강조되는 문장은 꽤 강합니다. 읽는 순서가 자유롭고, 선택에 따라 인물들의 생사가 달라진다는 식의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무슨 사건이 벌어지는가’만큼이나 ‘내가 어떤 순서로 읽었는가’가 독서 경험의 일부가 됩니다. 사실 이 지점 때문에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고 읽는 편이 좋습니다.
두 이야기의 기본 줄거리만 가볍게 잡기
‘게오스민’에는田釜, 국내 표기로는 다가마 유키오라고 옮길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노숙자인 노미야를 만나고, 노미야가 전직 형사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두 사람은 각자 말하지 못한 상처를 품고 있고, 대화가 이어질수록 과거의 사건과 감정이 천천히 드러납니다.
이쪽 이야기는 상실감, 죄책감, 복수심 같은 감정이 강하게 깔려 있습니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이 현실을 어떻게 견디는지, 또 그 고통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미스터리적 긴장감도 있지만, 인물의 마음이 꽤 무겁게 다가옵니다.
‘페트리코르’ 쪽에는 고등학생 고미네 유카가 중심에 놓입니다. 유카는 유리 공예가 리쓰코와 함께 지내고 있으며, 과거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가 살해 사건의 생존자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조용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 안쪽에는 아무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두 이야기는 처음에는 따로 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치오 슈스케식 구성에 익숙한 독자라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과 말들이 나중에 서로 닿을 가능성을 계속 의식하게 됩니다. 이 책은 바로 그 기다림을 이용합니다.
읽는 순서는 어떻게 고르면 좋을까
가장 깔끔한 방법은 책이 제시하는 자유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앞뒤 정보를 많이 찾아보지 않고, 그 순간 끌리는 제목부터 읽는 방식이죠. ‘게오스민’이라는 단어가 더 어둡고 거칠게 느껴진다면 그쪽부터, ‘페트리코르’라는 단어가 더 서정적으로 느껴진다면 그쪽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다만 성향에 따라 선택 기준을 조금 달리할 수는 있습니다.
- 어두운 사건과 복수의 감정을 먼저 따라가고 싶다면 ‘게오스민’부터 읽는 쪽이 잘 맞습니다.
- 청소년 인물의 비밀과 정체성 문제에 먼저 마음이 간다면 ‘페트리코르’부터 읽는 쪽이 자연스럽습니다.
- 작가가 만든 구조 자체를 느끼고 싶다면 첫 선택을 너무 오래 고민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 두 번 읽을 생각이 있다면 첫 독서는 직감대로, 두 번째 독서는 반대 순서로 가는 방식이 가장 재미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정답 순서’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어느 순서가 맞고 틀리다기보다, 내가 고른 순서가 그대로 내 독서의 버전이 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순서 추천을 너무 많이 찾아보다 보면 오히려 책이 준비한 긴장감을 먼저 소비해버릴 수 있습니다.
전작 N을 읽어야 이해될까
미치오 슈스케의 전작 N을 떠올리는 독자가 많을 겁니다. N 역시 읽는 순서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는 구성으로 알려졌고, 가능한 조합이 많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I는 그 흐름을 이어가되 선택지를 더 압축한 작품처럼 보입니다. 여러 갈래의 조합보다, 두 갈래의 선택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쪽입니다.
N을 읽었다면 작가가 왜 이런 구조를 좋아하는지 조금 더 빨리 감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I를 읽기 위해 N을 먼저 읽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두 작품은 각각 독립적으로 즐길 수 있고, I는 I만의 인물과 사건으로 굴러갑니다. 오히려 미치오 슈스케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I의 선명한 구조가 입문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실험적인 구성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살짝 낯설 수 있습니다. 소설은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싶다는 독자라면, 처음 몇 페이지에서 ‘내가 지금 뭘 선택해야 하지’라는 감각이 생길 수 있거든요. 반대로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좋아한다면 꽤 매력적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큽니다.
스포일러 없이 재미를 지키는 읽기 요령
I 같은 책은 줄거리를 많이 알고 들어갈수록 손해가 생깁니다. 특히 인물의 생사, 두 이야기의 연결 방식, 마지막 장면의 의미 같은 부분은 미리 알면 독서의 힘이 줄어듭니다. 검색할 때도 ‘해석’, ‘반전’, ‘엔딩’ 같은 단어는 다 읽은 뒤에 보는 편이 낫습니다.
읽으면서는 인물의 이름, 냄새와 날씨의 묘사, 대화 중 살짝 어색하게 느껴지는 표현을 표시해두면 좋습니다. 미치오 슈스케 작품은 작은 문장이 뒤에서 다른 표정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정보처럼 보였던 장면이 나중에 다시 떠오를 때, 그때의 쾌감이 꽤 큽니다.
- 첫 독서에서는 순서 고민보다 몰입을 우선으로 두기
- 두 이야기의 분위기 차이를 의식하며 읽기
- 인물의 말보다 말하지 않는 부분에 더 주목하기
- 다 읽은 뒤 반대 순서를 상상하거나 실제로 다시 읽기
솔직히 이런 구성의 소설은 호불호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작가의 장치가 과감해서 좋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이야기보다 구조가 앞선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미치오 슈스케 I가 흥미로운 건, 책을 읽는 사람이 단순한 관객으로만 머물지 않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어느 쪽을 먼저 펼쳤는지, 그 선택을 하고 난 뒤 어떤 감정이 남았는지까지 작품 안으로 끌고 들어오니까요. 그래서 이 책은 빨리 답을 확인하려고 넘기기보다, 처음 고른 순서를 자신의 독서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읽을 때 더 오래 남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